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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징징대볼께(우울 조심) - 속닥

아는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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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힘들어. 아니 정확히는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해.
나는 현재 26살이고 기숙사 있는 공장을 다니고 있어.

난 고아야. 지금은 연 끊었거든.
어릴적부터 아빠가 내게 성폭행, 폭행을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엄마는 내가 반항할때마다 너만 참으면 가정이 평화롭다며 날 억눌렀고 언니는 남들이 알까 두려워 자기도 겪었으면서 아니라고 부정하고 숨기기 급급하며, 남동생은 자기 일 아닌데 뭔 상관이냐며 비웃고 무시했었어.
중2때 자퇴하고 난 후로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성폭행과 폭행은 더 심해졌어. 아직도 기억나. 성인이 되기까지 5년이나 남았다며 울것 같은데 이를 악물고 '5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혼잣말 했던 순간이.
참고로 학교에선 왕따였어. 그래도 공부하는 건 즐거웠는데.. 시골 학교라 더 그런건지 몰라도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성희롱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등 질이 너무 안좋았고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질이 안좋았어. 흔히 싸구려 일진?같은 애들이었어. 전학오기 전 학교에선 잘 지냈지만 여기와서는 당연한듯 오자마다 왕따를 당했어.
하루하루가 시한폭탄 같더라. 집에서도 괴롭고 학교에서도 괴롭고. 진짜 공부하는 순간만이 유일하게 마음이 편한 시간이었어.
그러다 이전까지는 뒤에서만 욕했던 애들이 내가 지나갈때 크게 소리지르며 미친년?이라고 했던가.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안나는데 또라이라 했던가 찐따년이라고 했던가 암튼 내욕을 엄청 크게 소리지르더라고.
그리고 그때. 시한폭탄이 터졌어.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더 큰일을 겪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그날 날 괴롭힌 친구들 중 딱 한명을 정해서 뒤쫓아가 길에서 때렸었어.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정의감? 복수심? 그런 게 아냐. 난 그냥 제발 살고 싶었어. 하루하루가 매순간 너무 위태롭고 위험해서 제발 숨 좀 쉬고 싶었어. 근데 있잖아. 때리면서도 때리는 나 자신이 싫었어.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고 찐따가 맞긴 한건지 날 괴롭혔던 애들 중 가장 약한 애를 또 골라 때린 내가 한심스럽고 병신같고.. 그래서 울었어. 그 애를 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면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어.
미성년자인 내가 갈곳은 결국 집 말고는 없으니까.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당연히 생각했었지. 근데 다들 알잖아. 그 어린 나이의 나도 알고 있었어. 경찰에 신고해서 해결될거였으면 뉴스에 그렇게나 많은 여성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겠지.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봐도 현실적으로 해결된 사례를 전혀 찾지 못했었어. 오히려 가족들 신고했다가 가족들이 날 정신병 환자로 몰아가 정병에 강제로 갇히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학교 선생님? 지금까지 왕따당하는거 방관했는데?
암튼 그날 아빠가 자퇴하라고 했고 난 알겠다고 했어.

그러고 쭉 집안에 갇혔지. 물론 가족들 다 같이 가야되는 가기싫은 교회도 가고 아빠가 보내고 싶은 가기싫은 학원에도 다녔어. 집말고도 가기싫은 곳은 다 다녔어.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고 난 가족들에게 도우미 아줌마라 불리며 집안에 갇혀서 청소하고 애기 밥먹이고 기저귀 갈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했었어. 남동생이 어지럽힌 거 내가 다 치워야했고 안치우면 욕먹고 처맞아야했고 용돈은 당연히 없었고 굽신거리지 않으면 처맞고 유일한 소통수단인 핸드폰마저 부셔버리려 했었어.
몇번이고 아빠 손에 의해 바닥에 세게 던져졌는데 아빠가 가고나서 혼자 폰 주으며 케이스가 튼튼해서 다행이라며 울며 웃었던 기억이 나.

아.. 정말 가족 핑계대기도 지긋지긋하니 이쯤하고
성인이 된 후를 얘기할게.

나.. 누구보다 간절하게 독립을 꿈꿨지만 정말 죽을만큼 두려웠다? 집안에 갇혀서 고통받았으니 독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되면 기쁠 것 같잖아?
아니. 전혀. 기쁜 건 모르겠고 두려웠어. 어떤 느낌이었냐면 갓태어난 새가 날갯짓도 안해보고 냅다 절벽에서 뛰어내려야하는 느낌. 왜냐하면 여기 더 있으면 내가 진짜 죽거든. 그냥 지금 깔끔하게 죽거나 아니면 더 끔찍하게 죽을지 살지 도박하거나.

결국 정말 죽을 용기로 뛰어내렸고 다행이 날개는 펴졌어.

그러고나서 해피엔딩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보다는 나았지만 사회도 더러웠어.
특히 이제 20살 된 여자가 혼자 자취하며 일하는 건 정말 불안한 일이더라. 도와줄 사람이 없는 나만 그런건가.
마트 캐시로 처음 일을 했었어. 늙은 남자들과 우즈베키스탄 쪽 외국인 노동자들 무리가 특히 기분나쁘게 쳐다보고 비웃으며 중얼거리며 기분나쁜 손가락짓하고 진상손님은 당연하고.. 밤에 퇴근길이 무섭고..
특히나 나는 독립하고 나서도 여전히 잠을 잘 못잤어. 일종의 공황이었어. 항상 불안하고 예민한 상태였는데 그상태로 자려고 하면 숨이 차고 심장이 아프고 그랬어.

그래도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근데 사실 자퇴하고 난 후로는 공부를 못하게 됐었어. 공부를 하려고만 하면 또 공황이 왔거든. 죽을 것 같은 기분. 숨이 안쉬어졌어. 이 집구석에서 반드시 나가야만 내가 산다는 그 압박감과 꼼짝달싹할 수 없게 집안에 완전히 갇혀 더 심해진 폭행과 성폭행에 노출되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어떻게든 참고 공부 했었거든? 갑자기 어느날 잠에서 깼을때 몸이 안움직이더라고.. 움직이고 싶고 움직여야한다는 생각자체가 안돼. 뇌가 진짜 멈춰. 내 몸도 머리도 통제권을 잃어버린 느낌. 그러다 공포심이 확 올라오고 심장이 불안하게 뛰는데 그럼에도 움직여지지 않아. 그걸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손가락 끝만 움직이자고 겨우 되내이며 손가락 끝, 손, 팔, 몸 이렇게 겨우 천천히 움직여서 앉을 수 있었어.
그럼에도 그렇게 조금씩만 숨참아서라도 꾸역 꾸역. 어떻게든 공부해서 그 5년동안 딱 ebs책 3권 끝냈어. 중2영어, 중2수학, 중2과학. 19살이 되서도 여전히 중2책을 붙잡고 어떻게든 공부하면서 자괴감 많이 들었어. 내 노력이 참 효율이 드럽게 떨어지구나. 이걸 노력이라 할 수 있긴 한걸까.하면서.


내 이야기를 다 적는 것도 참 힘들다.
더 적을게 너무나 많지만.
이걸 끝까지 읽을 사람이 있을까.

여튼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 돈이라도 모았으면 좋았을텐데 정신병 있으면 그게 제일 힘든 일이더라고.

나는 왜 주제에 맞지 않게 헛된 꿈을 꿔서.
대출받아서 학원다니고 공부하고..
그럼에도 해내지 못하고. 결국 지금 쌓인건 빚밖에 없고.

근데 꿈이 아니면 내가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
꿈이 있어야 겨우 현실을 받아들일 힘이 났어.

사실 지금도 꿈이 있어.
그래도 이제는 빚갚으려고 일하면서 독학으로만 공부하고 있는데.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이제 더는 자신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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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때 그고통버텼어 할수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