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본인 직업을 창피해하는 것 같아 - 속닥
아는언니
- 아는언니
36
0
1
엄마가 대학을 못나왔어 집안 형편이 어렵기도 했고 엄청나게 가부장적이어서 외삼촌한테만 다 몰빵해줬고 엄마한테는 얼른 취업하라고 했어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거 좋아했고 성적도 좋았는데 대학을 못 감 엄마 세대에는 그게 워낙 당연했으니까 큰 불만도 없는 것 같음 다만 내가 대학 안가겠다 했을 때는 난리나긴 함... 엄마처럼 살고 싶냐 함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어
엄마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우리 낳고 쭉 가정주부로 살았어 다행히 아빠가 돈을 잘 버셨거든
엄마는 엄청 외향적인 편이라 아마 가정주부 생활이 많이 답답했나봐 우리가 어느 정도 컸다 싶었을 때부터 알바도 했고 사회생활을 시도했어 그러다가 몇 년 전에 관리사무소에 취직해서 오래 다니고 있어
난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게 나쁜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해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필요한 직업이잖아 당장 엄마가 일하는 관리사무소가 문을 닫으면 그 건물 제대로 안 돌아갈거야 엄마를 보면서 관리사무소가 생각보다 더 중요한 곳이고 되게 다양한 일을 하는 곳이구나 싶었어 그냥 사무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앞서 말했듯 내가 대학 안가겠다 했을 때 엄마가 너 엄마 처럼 살고 싶냐 말했을 때는 그냥 엄마가 대학 안 간 게 속상했나보다 하고 넘겼었어 그 당시에는 내 문제로 내가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기도 했고
그러다가 작년에 내가 엄마가 일하는 건물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었어 근데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난 그때도 어쨌든 건물 관리 일로 계속 마주쳐야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어
엄마가 엄마 직업을 부끄러워한다고 확신한 최근 일이, 내가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한테 엄마 직업을 딱히 말할 일이 없었어 그러다가 내가 일이 있어서 남자친구가 나를 엄마 회사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고 그때 말하게 됐어 거기가 좀 큰 건물이고 회사며 카페며 엄청 다양한 업종이 입점된 곳이라 궁금했는지 어머님은 무슨 화사 다니셔? ㅇㅇ? ㅇㅇ?(건물 외관에 보이는 회사 간판 보면서 말함 대기업 지사가 몇 곳 있어서) 그래서 아냐~ 엄마는 관리사무실에서 사무 업무 보고 있어~ 이렇게 말했고 남자친구도 아 그렇구나 했어
근데 남자친구가 나를 회사 건물까지 데려다준 걸 알고 엄마가 꽤나 조심스럽게 혹시 남자친구한테 엄마 무슨 일하는지 말했어? 이래서 그랬다고 했더니 그걸 왜 말하냐길래 왜냐고 물어보니까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 너 남자친구 집 잘산다며~ 이래서 뭐가 좀 그러냐고 하니까 안부끄럽냐더라
진짜 상상도 못한 얘기여서 그게 뭐가 부끄럽냐고 물어보니까 엄마가 그냥 넘겼는데 그 전에 엄마랑 종종 하던 얘기까지 다 조합해서 생각해보니까 엄마는 엄마가 관리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엄청 부끄럽나봐...
아빠는 대기업에서 일하는데 최근에 아빠도 임금피크 들어가서 현실적으로 엄마가 퇴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엄마는 엄마 나이에, 그리고 엄마 학력과 경력에 이직도 못한다 하고 난 솔직히 관리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뭐가 부끄러운지 전혀 모르겠거든
오히려 엄마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생각하니까 너무 속상해

속상하지만 언니가 더 떳떳하게 해주면 돼 자랑스러워해주소